[성명론 2] 천기유사 天機有四 세상의 구조 4가지

[성명론 2] 천기유사 天機有四 세상의 구조 4가지

[동의수세보원 원문]

천기유사

天機有四

천기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천天은 하늘이고 기機는 틀, 기계, 베틀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기機는 기밀機密, 기미幾微, 기회機會에도 들어갑니다.

천기天機는 하늘의 뜻, 하늘의 기밀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천기가 들어가는 사자성어로 천기누설天機漏洩이 있습니다.

이을호는 천天은 대자연의 이법理法이나 상제上帝의 의지로 파악이 되며 기機는 기틀, 기밀을 말하는 것이니 사상의학에서 천기란 ‘선천적 구조’를 의미한다고 했습니다.(이을호, 사상의학원론, 사단법인 올재, 2018, 22쪽)

이런 점을 종합해서 생각해보면 천기란 ‘세상의 구조’로서 인간에게 주어진 배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人事 역시 그 4가지 구조를 만드는 일입니다.

[동의수세보원 원문]

일왈지방 이왈인륜 삼왈세회 사왈천시

一曰地方 二曰人倫 三曰世會 四曰天時

첫째는 지방이고, 둘째는 인륜이고, 셋째는 세회이고, 넷째는 천시이다.

(1) 지방

지地는 땅, 방方은 네모, 방향, 나라, 장소 등의 다양한 뜻이 있습니다. 

천기의 첫 번째인 지방地方은 장소, 부분, 위치, 점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2) 인륜

두 번째인 인륜人倫에서 륜倫은 윤리, 도리라는 뜻도 있지만 동류同類(같은 무리)라는 뜻도 있습니다. 여기서는 후자의 뜻으로 쓰였습니다.

(3) 세회

회會에는 모임, 단체, 조직이라는 뜻이 있으므로 세 번째인 세회世會는 사회로 보아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사회에는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모든 형태의 인간 집단. 가족・마을・조합・교회・계급・국가・정당・회사 따위라는 뜻'이 있으므로 엄밀히 말하면 사회 안에 인륜과 세회가 포함됩니다.

인륜도 사람들의 모임이고 세회도 사람들의 모임인데 차이점이라면 인륜은 혈연, 지연, 학연(예. 가족,  고향사람, 친구, 선후배)처럼 자연적이고 개인적이면서 일단 정해지면 항구적으로 유지되는 모임을 가리키고, 세회는 좀 더 공식적이면서 기업이나 단체, 국가처럼 목적이 있으며 필요에 따라 형성되고 해체되는 모임을 가리킵니다.

국가國家는 조국祖國 또는 모국母國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면 인륜적인 성격(같은 무리)이 강하고, 여러 조직이 모여 있는 사회 전체를 가리키는 뜻으로 쓰이게 되면 세회의 성격(단체, 조직)이 강합니다. 그러나 지구 전체로 보면 하나의 나라도 지역, 지방의 의미(장소, 부분)가 됩니다.

세회는 인륜보다 입체적인 구조로 되어 있는데 사회에는 여러 계층이 있고, 회사나 조직에는 직급에 따른 상하 관계가 있습니다. 이을호는 이런 특성에 주목하여 지방-인륜-세회-천시의 순위는 진화론적이며, 지방: 길이의 1차원, 인륜: 넓이의 2차원, 세회: 부피의 3차원, 천시: 변화의 4차원이라는 주석을 달았습니다.(이을호, 사상의학원론, 사단법인 올재, 2018, 27쪽)

[표 1] 지방, 인륜, 세회, 천시의 순위

순서	천기	차원	예
일	지방	길이의 1차원	지점, 개인
이	인륜	넓이의 2차원	같은 무리
삼	세회	부피의 3차원	단체, 조직
사	천시	변화의 4차원	시절, 시대

인륜의 관계는 수평적이며 세회의 관계는 입체적(수평적+수직적)인 특성이 강합니다. 인륜에 속하는 가족은 본질적으로 가족의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수평적인 관계이지만 부모와 자식, 형과 동생 간에는 서열이나 순서가 있고, 가족의 의사결정을 할 때나 종친회의 등의 공식적인 성격의 모임에는 세회적인 성격이 들어갑니다. 향우회, 동창회 등의 모임도 기본은 친목회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이익단체의 성격을 띠게 되면 목적이 있는 조직으로서 세회적인 성격을 갖게 됩니다.

이제마는 ‘세회는 어지럽게 다툰다. 世會紛競’고 했습니다.(이제마, 격치고, 유략, 천세) 세회의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도태되지만 인륜의 모임에서는 웬만큼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고서는 구성원에서 제명되지 않습니다. 입시에 실패하거나 직장에서 해고되어도 가족은 받아주고 지지해줍니다. 범죄를 저질러서 사회에서 격리되어도 그 사람의 가족이나 고향, 출신학교 등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4) 천시

시時에는 시대, 시기, 시간, 철, 당대, 현재, 기회 등의 뜻이 있습니다.

천시天時에는 철, 절기, 하늘로부터 받은 좋은 기회 등의 뜻이 있습니다.

네 번째인 천시天時는 하늘의 때, 세상의 시기이니 다른 말로 하면 시절時節, 시대時代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대는 중세, 근대, 현대 등의 구분을 할 수도 있고 농경시대, 산업혁명시대 등의 구분을 할 수도 있고 그보다 더 세밀한 구분도 가능합니다.

천시에 시時가 들어갔으니 시간적인 의미로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압박감에 시달리기 쉽지만 시간의 흐름보다는 '동시대 전체'의 의미가 더 강하다고 생각됩니다. 개인, 집단, 조직, 국가가 다 모여서 한 시대를 구성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석해야 지방-인륜-세회-천시를 부분에서 전체로 사고의 범위가 확장되어 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중용에는 ‘위로는 하늘의 때를 법으로 하고, 아래로는 물과 흙의 풍습을 따른다. 上律天時 下襲水土’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늘의 때를 법으로 한다는 말은 시대에 따라 상식이나 가치관은 변할 수 있으나 그 시점의 보편적인 통념을 법으로 삼는다고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절대적인 선善이나 정의正義가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이 도달한 합의를 법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악법도 법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참고]

동의수세보원에 나오는 한자의 뜻을 파악할 때는 국어사전이나 한자사전만이 아니라 중국어사전을 보는 것이 좋습니다. 중국어사전은 한자사전과 달리 실제로 많이 쓰이는 용법을 위주로 의미를 풀어놓았기 때문에 문장속에서 해당 글자가 가지는 뜻을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륜倫'을 예로 들면 한자사전에는 윤리, 도리, 무리 정도로 풀어놓고 있으나 중국어사전에는 인륜, 조리 외에 동류同類라는 뜻이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국어사전이나 한자사전을 따라서 인륜을 윤리, 도리라고 해석하면 지방-인륜-세회-천시를 장소-윤리-사회-시대라고 이해하게 되어 개인(수신)-무리(제가)-조직(치국)-전체(평천하)로 개념이 확장되어 가는 것을 파악할 수 없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