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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수세보원해설

[성명론 6] 이청천시 耳聽天時 귀로 천시를 듣는다


by 짠내리빙 2020. 7. 29.

[성명론 6] 이청천시 耳聽天時 귀로 천시를 듣는다


[동의수세보원 원문]


이청천시

耳聽天時

귀로 천시를 듣는다.

[동무자주 원문]


이속신 무형지물 고능청천시 경청 무형지성

耳屬神 無形之物 故能聽天時 輕淸 無形之聲

귀는 신神에 속하는데 신은 형태가 없는 것이므로 천시의 가볍고 맑은 형태가 없는 소리를 능히 들을 수 있다.


속屬은 부착하다, 거느리다는 뜻도 있고 속하다, 관할 하에 있다는 뜻이 있습니다.


'부착하다'라고 해석하면 ‘귀耳가 신神을 부착하다’는 뜻이 되고, '속하다'라고 해석하면 ‘귀耳는 신神에 속하다’는 뜻이 됩니다. 귀가 신을 부착한다고 보면 신령혼백은 사람의 외부에 있는 것이 되고, 귀는 신에 속한다 또는 귀는 신의 관할 하에 있다고 보면 귀가 (외부의) 신神을 부착시키는 것이 아니고 (내부의) 신神이 귀를 통해 천시를 듣는 것이 됩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귀는’ 또는 ‘귀가’ 천시를 듣는 것이 아니라 신神이 ‘귀로’ 천시를 듣는 것입니다. 다음에 나오는 눈, 코, 입에 대해서도 ‘눈이’ 보고, ‘코가’ 맡고, ‘입이’ 맛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안에 있는 영靈과 혼魂과 백魄이 ‘눈으로’ 보고, ‘코로’ 맡고, ‘입으로’ 맛보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무형지물無形之物, 무형지성無形之聲에서 무형無形이란 아직 실체가 구체화되지 않아서 무게는 커녕 형태조차 잡히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따라서 천시의 가볍고 맑은 형태가 없는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아주 작은 기미나 조짐도 일이 커지지 전에 알아차릴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동의수세보원과 동무자주에는 귀와 듣는 것에 이어 눈, 코, 입과 보는 것, 냄새 맡는 것, 맛보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므로 천기天機를 감지하는 인간의 감각에 대해 좀더 생각을 전개해 보겠습니다.


(1) 듣다의 뜻


‘듣다’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사람이 말이나 음악을 듣는 것처럼 감각기관을 통해 소리를 감지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영어의 listen처럼 의도적으로 어떤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부모님 말씀 잘 들어라’라고 할 때처럼 타인의 의견을 수용해서 그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 외에 ‘약이 잘 듣는다’처럼 제대로 작동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듣다와 비슷한 말로 ‘알아듣다’가 있습니다. 알아듣다는 ‘발소리를 알아듣다’처럼 소리를 분간하여 듣는다는 뜻과 ‘말귀를 알아듣다’처럼 남의 말을 듣고 그 뜻이나 의도를 안다는 뜻이 있습니다.


(2) 듣기의 단계


듣는 것의 첫 번째 단계는 우리 몸의 감각기관이 소리를 감지하는 것입니다. 청신경에 이상이 있으면 듣지 못합니다. 청신경이 정상이어도 딴생각에 몰두하고 있다거나 하면 들리지 않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그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두뇌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기계음이나 동물의 소리, 외국어의 경우에는 청신경이 신호를 감지해도 해석할 수 없습니다. 이해력이 부족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할 것입니다. 우이독경牛耳讀經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세 번째 단계는 그 소리가 의미하는 바를 수용하거나 공감하는 것입니다. 수신한 정보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서 마이동풍馬耳東風이 됩니다.


누군가 어려운 사람들을 돕자고 하는 말을 들었을 때 ‘내 코가 석 자인데 남을 왜 도와? 어려운 건 자기 사정이지, 노력을 안 해서 그런 게 아닌가? 나 어려울 때 아무도 안 도와줬는데.’라고 생각한다면 어떤 말을 듣고 이해는 했지만 수용은 하지 않는 것입니다.


심할 때는 누가 그 말을 했는지 기억해 두었다가 그 사람이 자신을 위해 물건을 사거나 하는 걸 보면 ‘남을 돕자면서 너 그런 거 사도 돼?’ 하면서 자신이 들은 말을 타인을 공격하기 위한 정보로 활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실은 알아들었으나 진실에는 귀를 막았고, 남의 말에 전혀 공감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네 번째 단계는 그 소리가 의미하는 바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어떤 말을 들었을 때 그 말이 뜻하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 듣다의 마지막 단계라고 생각됩니다. 어려운 사람을 돕자는 말을 듣고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하면 기회가 될 때마다 남을 돕는 행위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3) 외부에서 보낸 신호를 내가 받아들이는 것


잘 듣는다는 것은 외부세계에 대해 열려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열려있다는 것은 24시간 개방체제로 전파를 수신하기 위해 대기하는 것입니다. 


외부세계에 귀를 기울여 들을 때는 수동적인 입장이 되고 자기 내면에서 나오는 신호를 살피는 것은 상대적으로 소홀해집니다. ‘외부에서 보낸 신호’를 ‘내가 받아들이는 것’이므로 나와 남 중에서 필연적으로 남이 우선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잘 듣기 위한 첫 단계는 남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듣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라는 매개체가 끼어들게 되면 남의 말을 걸러서 듣거나 왜곡해서 듣게 됩니다. 말을 하는 상대의 감정이나 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의 입장에서 임의대로 정보를 재구성하게 되는데 이런 경우에는 ‘듣는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같은 말을 듣더라도 상대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권위 있는 인물이나 윗사람이 하는 말은 받아들이지만 초라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사람이 하는 말이나 자신의 적 또는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의 말은 아무리 옳은 말이어도 듣지 않습니다.


이와는 다르게 자기보다 아랫사람이 하는 말이나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 심지어 자신과 반대편에 있는 사람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상대의 지위나 배경 같은 외적 조건을 배제하고 편견이나 사심 없이 그 말 속에 들어 있는 진실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은 현장에서 문제를 직접 겪었을 확률이 높고, 모르는 사람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지 않기 때문에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을 수 있으며, 자신의 경쟁상대나 적은 자신이 놓치고 있는 부분에 대해 예리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진실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4) 남의 말을 안다는 것


이런 정도로 마음이 열린 사람은 누가 봐도 잘 듣는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람도 상대가 틀린 말을 하면 듣지 않습니다. 잘못된 이야기를 무리하게 우기고 있거나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빙빙 돌리면서 핵심을 비켜 가면 더는 들을 말이 없다고 판단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포기하면 듣기평가 고수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경우 상대방이 꼭 집어 말로 하지는 않지만 하는 말은 ‘그래, 네 말이 옳을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불리하므로 인정하지 않겠다.’라고 하는 거부 의사입니다. ‘싫다’는 것입니다.


맹자는 ‘남의 말을 안다’는 것은 ‘편파적인 말을 들으면 무엇을 덮으려고 하는지를 알고, 음탕한 말을 들으면 어디에 빠진 것인지를 알고, 그릇된 말을 들으면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를 알고, 핑계 대는 말을 들으면 얼마나 구차한지를 아는 것이다. 何谓知言 曰 诐辞 知其所蔽 淫辞 知其所陷 邪辞 知其所离 遁辞 知其所穷’라고 했습니다.(맹자, 공손추)


(5) 비언어적 의사표현을 알아듣지 못하는 이유


상대방의 비언어적 의사 표현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이유는 청각을 통한 언어적인 소통방식에 지나치게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생각을 전부 말로 표현하는 사람은 눈으로 보면 금방 알아볼 수 있는 타인의 행동이 가진 의미를 잘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알아듣지’ 못했다기보다는 ‘알아보지’ 못했다가 정확한 표현입니다.


이런 사람은 좀처럼 남에게 눈치를 주지도 않는 대신 남의 눈치도 잘 보지 않습니다. 본인이 눈치코치를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남의 눈치코치를 잘 읽지 못하는 것입니다. 코치는 눈치를 강조하는 말이라고 하는데 눈치와 코치는 다르다는 것이 ‘코로 인륜을 맡는다. 鼻嗅人倫’입니다.


의사 표현을 말로 하지 않고 눈치를 주는 이유는 직접 말로 표현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껄끄러운 일들이나 먼저 말로 하는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을 피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즉 폭탄 돌리기를 하는 것인데 눈치가 없으면 이를 알아채지 못하고 덥석 받아들게 됩니다.


(6) 청각과 촉각


듣는 것에 의존하는 사람은 예민한 청각만큼 촉각도 예민합니다. 온 신경이 외부를 향해 있기 때문입니다. 외부의 물리적인 자극을 전기신호로 바꾸어서 뇌에 전달한다는 점에서 청각과 촉각은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잘 듣는 사람은 외부자극을 무방비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창문을 열어놓으면 공기 중에 섞여 들어오는 냄새를 막을 수 없듯이 상대의 말에 들어 있는 정보를 일단 수용하기 때문에 그 안에 섞여 있는 독기를 홀라당 뒤집어쓰고는 따가운 걸 주체하지 못해서 쩔쩔맵니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론 눈치가 없어서 상대의 악의를 잘 알아채지 못하고 비꼬는 것도 잘 알아듣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은 감지하지만 제대로 해석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사람은 자기 내면에 없는 것은 신호를 감지해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에둘러 하는 말, 반어법, 떠보는 말,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 유형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상대방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그에 대한 답변도 곧이곧대로 합니다. 마음에 없는 말은 절대 하지 못하므로 아부, 외교적 수사, 립서비스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이런 특성이 눈치가 없는 것과 결합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혼자 대답하거나 팩폭(팩트 폭력)을 시전하는 넌씨눈(넌 씨발 눈치도 없냐)이 됩니다. 


(7) 잃어버린 시력을 회복하고 싶다면


조그마한 잘못에도 죽일 듯이 몰아붙이는 직장 선배들, 운전대만 잡으면 입에 걸레를 무는 운전자들, 선거에 이기기 위해 없는 말을 지어내어 상대를 공격하는 정치인들. 매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자극 역치가 낮은 사람에게는 그런 방식의 인간관계로 둘러싸인 사회는 보호 장비도 없이 맨몸으로 헤쳐 나가야 하는 가시덤불 길로 보입니다.


신문을 읽으려 해도 곳곳이 지뢰밭입니다. 정치공작과 내로남불을 일삼는 정치면, 각종 경제사범이 득실거리는 경제면, 분쟁과 테러가 일상인 국제면, 인면수심의 범죄가 줄을 잇는 사회면. 사람이 같은 사람에게 그런 짓을 했다는 것이 차마 믿어지지 않아서 아예 눈을 감아버린 것이 귀가 밝은 사람이 시력을 쓰지 않게 된 이유입니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므로,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는 출입금지이므로 눈에 비친 세상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고, 세파에 물들면 더는 자기 자신이 아니게 될 것 같은 위기감으로 인해 정신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점점 도피형 인간이 되어갑니다.


분쟁과 갈등이 초래될 수 있는 상황을 가급적 피하려다 보니 자꾸만 자기 것을 양보하게 되고 세상 돌아가는 것에 둔감해지며 사는 세계가 점점 좁아집니다. 그러나 눈은 감아도 귀는 열려 있으니 주어지는 정보에만 반응하는 소극적인 성격이 됩니다.


잃어버린 시력을 회복하고 싶다면 감았던 눈을 뜨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그러나 다시 눈을 뜬다는 것은 그동안 감당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외면해왔던 문제들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정치와 관련한 명언들이 있습니다.


스스로 통치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는 경우에 그에 대한 최대의 벌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한테 통치를 당하는 것이다.(플라톤)


악이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유일한 것은 선한 사람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에드먼드 버크)


다 포기하고 내주어도 더 물러날 곳이 없게 되면 정치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며, 설령 원하지 않는 싸움일지라도 이기지 못하면 소박한 생활조차 지키기 힘들다는 걸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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