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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수세보원해설

[성명론 7] 목시세회 目視世會 눈으로 세회를 본다


by 짠내리빙 2020. 7. 30.

[성명론 7] 목시세회 目視世會 눈으로 세회를 본다


[동의수세보원 원문]


목시세회

目視世會

눈으로 세회를 본다.

[동무자주 원문]


목속영 유상지물 고능시세회 부동 유상지색

目屬靈 有像之物 故能視世會 浮動 有像之色

눈은 영靈에 속하는데 영은 형상이 있는 것이므로 세회의 떠서 움직이는 형상이 있는 색깔을 능히 볼 수 있다.


상像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지만 그 형태가 뚜렷하게 고정되지 않은 것을 의미합니다. 아직은 냄새를 맡을 수도 맛을 볼 수도 없지만 유상有像은 천시天時의 무형無形보다는 훨씬 더 실체에 가까운 상태입니다. 눈은 귀처럼 무형의 것을 감지할 수는 없지만 유상의 것은 감지할 수 있습니다.


(1) 귀로 천시를 듣고 눈으로 세회를 보고


듣는 것과 보는 것은 다릅니다. 운동을 하면 살이 빠진다고 전문가가 이야기하는 티브이방송을 ‘보았’어도 다른 사람이 보낸 정보를 수신한 것이므로 ‘들은’ 것입니다. 그러나 운동을 해서 살이 빠진 사람의 운동 전후 비교영상을 보거나 주변에서 운동으로 살을 뺀 사람이 있다는 걸 확인했다면 본 것이 됩니다. 운동을 하면 근육량도 늘고 기초체온이 올라서 건강에 도움이 되지만 관절에 무리가 갈 수 있고 등을 따져보는 것은 냄새를 맡는 것이고, 직접 운동을 해보니 진짜로 살이 빠진다고 하는 경험을 한 것은 맛보는 것입니다.


책을 보는 것도 듣는 것입니다. 자기가 직접 보거나 경험하지 않았고, 남이 말로 하는 대신 글로 적어 놓은 것을 내가 읽는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글을 처음 배운 사람이나 독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묵독을 하더라도 읽은 글자를 소리로 변환해서 뇌에 입력하는 반면 속독이 가능한 사람은 글자를 소리로 변환하지 않고 시각 정보를 그대로 뇌에서 받아들여 의미를 이해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시각적 능력이 발달했다고 하더라도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본질적으로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2) 들어야 할 것과 보아야 할 것


천시는 귀로 듣는 것이고 세회는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들어야 할 것과 보아야 할 것을 구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고 천시를 눈으로 보면 자기중심적으로 상황을 인식하게 되며, 세회를 귀로 들으려고 하면 남에게 잘 속아 넘어갑니다.


드라마를 볼 때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면 화면만 보고 대사를 짐작해야 합니다. 아무리 사람의 표정을 잘 읽는다고 하더라도 독순술을 쓰지 않는 이상 실제 내용과는 거리가 생깁니다. 듣지 못한다면 타인의 속마음을 전혀 알지 못하고 제멋대로 추측하고 판단하게 될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듣기만 하고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누군가가 감정을 담아 하는 말을 무조건 진심이라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감정이란 주관성이 강할 뿐만 아니라 거짓일 가능성이 있음은 물론이고 설사 거짓이 아니라고 해도 본인이 겪은 것보다 과장되었을 가능성 또한 얼마든지 있는데도 설마 없는 말을 지어서 하겠나 하고 생각해 버립니다. 남의 말을 전혀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잘 듣고, 잘 보아야 합니다. 천시를 들을 방법이 무엇인지 보통 사람은 알 수 없지만 민심心이 곧 천심心이라고 했으니 국민들의 마음心의 소리나 자기 내면의 양심心의 소리를 듣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듣는다는 것은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心을 듣는 것입니다.


(3) 무질서 속에서 반복되는 패턴 찾아내기


세회는 어지럽게 다툰다고 했으므로 눈으로 세회를 본다고 하는 것은 사람이나 조직이 서로 속고 속이면서 편을 가르고 세력 싸움을 하는 것에 주목한다는 뜻이 됩니다. 잘 보는 사람은 한 집단 내의 역학관계나 세력 구도에 대해 동물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습니다.


잘 보는 사람은 또한 무질서하게 보이는 가운데에서도 반복되는 특징이나 유형을 잘 잡아냅니다. 두뇌 회전이 빨라서 보는 즉시 정보를 취사선택해서 비슷한 범주로 묶을 수 있어서 패턴의 과학이라 불리는 수학을 잘합니다.


서양에서 정리한 이론들을 접할 때면 무슨 현상, 무슨 증후군 하는 식으로 온갖 것을 다 구분하고 이름을 붙인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있는데 이는 아마도 서양인들이 동양인들보다 보는 능력이 더 발달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제마가 동무자주에서 언급한 ‘눈은 영靈에 속하는데 영은 형상이 있는 것이므로 세회의 떠서 움직이는 형상이 있는 색깔을 능히 볼 수 있다.’는 이런 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람의 유형을 특징에 따라 여러 체질로 분류하는 것도 보는 능력에 기반한 것입니다.


(4) 듣기와 보기 비교


듣는 것과 보는 것을 비교해보면 듣는 것은 빠르지만 수동적인 데 비해 보는 것은 그보다는 느리지만 능동적입니다. 듣는다는 것은 타인이 이미 구성하여 발송한 정보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지만 본다는 것은 어지럽고 혼잡한 현상 속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뽑아내어 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상대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즉 정보원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들어도 믿지 않고 반드시 자기 눈으로 확인하려고 합니다. 따라서 보는 과정에 능동적인 면이 많다는 것은 자아라는 필터가 개입될 여지가 많아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또한 한 번 틀이 잡힌 후에는 같은 패턴이 반복될 때 인식속도가 빨라지지만 때로는 그 고정관념이 편견으로 작용해서 정확한 인식을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매번 백지상태에서 패턴을 찾아 분류하는 것이 번거롭고 힘이 드는 데다 기존에 알고 있는 지식이나 가치관을 전면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을 피하려고 더는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지 않고 이미 아는 틀에 현실을 끼워 맞추려는 유혹에 빠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듣고 보고 냄새를 맡고 맛을 보는 이유는 천기를 정확하게 인식하기 위해서인데 듣기만 하고 보지 않으면 또는 보기만 하고 듣지 않으면, 혹은 들어야 할 것을 보고 보아야 할 것을 들으려고 한다면 받아들인 정보의 한계로 인해 현실 파악에 오류가 생길 수밖에 없으며 그 오류의 크기만큼 일이 틀어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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